관상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의 마력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3-11-29 14: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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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손금, 사주, 궁합, 풍수지리, 자미두수(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만든 동양의 점성술), 성명학…
미래를 예견해주는 점복(占卜) 행위는 고대로부터 시작되어 스마트 세상이라고 하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때로 미신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이것들이 여전히 유효한 까닭은 앞날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 아닐까?
영화 탓에 믿든 믿지 않든, 아무튼 관상 열풍이다. TV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어떤 스타의 관상이 좋은지 호들갑스럽게 떠들어댄다. 이미 결과론적인- 예상 가능한 답변들을 듣고는 피식 웃어버리지만… 어느새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내 모습… 재물운은 있는지, 출세는 가능한지… 역술가의 설명에 따라 어설프게 내 관상에 점수를 매겨본다. 제발 성공을 부르는 그 모든 것이 다 충만한 관상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 관상

“사람의 얼굴에는 세상 삼라만상이 모두다 들어있소이다”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 그는 사람의 얼굴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섬뜩하리만큼 정확한 그의예언은 그를 산속에서 한양으로, 그리고 궁으로까지 입성하게 만든다.
아들 진형(이종석)을 위해, 그토록 진형이 원치 않았던 관상쟁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돈과 명예가 보장된 듯 보이는 내경의 삶은 그 명성이 날로 높아갈수록 위태롭기만 하다.
죽음의 위협이 늘 가까이에 있는… 남들의 앞날을 알려주는 대가라고 하기에는 참으로 끔찍하기 짝이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불식시켜주는 대가로 삶에 대한 불안함을 얻은 셈이다.

누군가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견한다는 건 사람들에게 신앙과도 같은 믿음을 주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마치 운명을 숙명으로 만드는 일인 것처럼.
“운명에 체념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내경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까지 바꿔가며 벼슬길에 오른 진형, 그는 벼슬을 하게 되면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아버지의 무시무시한 예언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비루한 운명을 개척하려 애쓴다.
하지만, 운명은 노력여하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건 불행하게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통하지 않는다. 진형의 운명은 그 자체로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 되고 만다. 수양대군의 역모를 알게 된 내경은 조선의 위태로운 운명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피바람은 역사의 숙명처럼 김종서를 지나 아들 진형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아들을 대신해 자신의 눈을 앗아가도 좋다는 내경의 울부짖음은 아비의 간절한 소망일 뿐, 결국수양대군이 쏜 화살은 진형의 심장을 관통한다. 자신의 눈을 통해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앞날을 점쳐주었던 내경, 그는 아들에게 했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광경을 끔찍하게 자신의 두 눈으로 지켜보는 형벌을 받는다. 어쩌면 내경이 관상쟁이로 살지 않기를 바랬던 진형의 마음 역시 아버지의 불행한 앞날을 예견했던 것은 아닐까?

“파도만 볼 줄 알았지, 그 파도를 일으키는 바람을 보지 못했어”
삶에 대해 회한으로 점철된 내경의 대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끝까지 관상을 통한 그의 예언을 완벽하게 실행시키고야 만다. “목이 잘릴 상” 이라던 한명회, 그는 사후에 연산군 생모 폐위와 연관되어 관에서 시체로 목이 잘리게 되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된다.

글쎄……???
탄탄한 내러티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감독의 탁월한 연출력까지 <관상>은 오감이 만족한 영화였지만, 극장을 나서는 동안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기가 힘든 것 또한 사실이었다.
앞날을 안다는 것이,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하지 못하고 그것이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숙명처럼 삶을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 휘몰아 넣는 것이라면, 차라리 그것을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다 알아버렸을 때 사라지는 기대감보다 알지 못하기에 생겨나는 기대감… 확실히 그래야 삶은 더 재미있어진다.
영화 <관상>…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의 마력- 그건 그냥 영화일 뿐!!!
아직까지도 내가 믿는 건 “관상은 변한다. 고로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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