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칼럼] 노래 서바이벌 프로를 보면서...

손석한 / 기사승인 : 2016-03-24 10: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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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파 TV3사의 가요 서바이벌 프로가 인기다. 경쟁과 탈락, 눈물과 환호가 인생과 닮았다.(MBC'복면가왕' 방송 캡처)

제2장 노래 서바이벌과 우리 사회


공중파 TV 방송 3사가 주말에 방송하는 가요 관련 프로그램이 무척 인기를 끌고 있다.
KBS의 '불후의 명곡', MBC의 '복면가왕', 그리고 SBS의 'K팝스타 시즌5'가 그것들이다. 아마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세 프로그램들 중에서 적어도 한두 개는 즐겨 시청할 것이다. 세 개 모두 챙겨보는 분들도 상당수 있으리라. 세 프로그램의 공통점은 대결 또는 경선이다.


올해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각 당의 공천과정에서 예비 후보자들의 대결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와 같이 대결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흥미를 돋운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노래 실력을 나름대로 비교 및 평가를 하면서 자신의 예측과 실제 결과가 맞아 떨어지는지 혹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모여서 서로 누가 잘 맞히는지 겨루는 과정을 통해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공통점이 보이는 가운데서도 마치 삼인삼색처럼 서로 미묘하게 다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마침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도 씁쓸하기까지 하다.


먼저 'K팝스타 시즌5'다. 여기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아직 정식 가수가 아닌 가수 지망생들이다. 그리고 그들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고 채점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가요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획사 대표들로서 그들 또한 대중음악인 출신들이다. 하긴 어느 분야인들 그렇지 않을까? 선배 직업인이 같은 분야의 후배 직업인을 뽑는 것은 당연하다.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되기 이전에 이미 이와 비슷한 무수한 과정들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운 좋게도 우리는 그들의 등용문 과정을 지켜보는 행운을 얻게 되었고, 지금 벌써 시즌5이므로 꽤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들의 눈물이다. 심사위원의 칭찬에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고, 객석에서의 박수에 고무되어 눈물을 흘리며, 심사위원의 날카로운 지적에 속상해서 눈물을 흘린다. 필자가 음악에 그리 조예가 높지 않아서 그런지 보고 듣기에는 모두 무척 노래를 잘 하는데도 그들에게는 예외 없이 순위가 매겨진다. 그리고 점차 탈락자가 많아지고 생존자는 줄어드는 과정을 밟아나간다. 이를 지켜보는 필자의 가슴도 조마조마한데, 당사자나 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하랴! 그러나 이것이 프로그램의 현실이다. 아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가수를 하려는 사람들은 많고, 그 결과 엄청난 노력과 투자를 해서 역량을 갖춘 자들이 역시 많은데도 사회에서 필요하고 대중에게 소비되는 가수들은 한정되어 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금융인, 공무원, 전문직, 교사 등을 지망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 넘쳐나고 있는데, 정작 필요한 숫자는 너무나도 제한되어 있고 앞으로 이마저도 더 줄어들 전망이라는 사실이 겹쳐서 인식된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참가자들의 기쁨과 영광 외에 슬픔과 좌절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은 공감한다. 우리의 사회 현실을 잘 반영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하지만 아쉬워한다. 비록 패자부활전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탈락자들을 보다 더 감싸주고 격려해주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막연하고도 어려운 기대에.


그렇다면 '불후의 명곡'은 어떠한가? 여기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일단 노래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기성 가수다. 그런데 그들 역시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청자들은 다양한 장르와 창법의 노래를 들으면서 놀라움을 금하지 못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기존의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상품의 개발을 요구받고 있음이다. 전설의 선배 가수가 불렀던 기존의 노래는 교과서요, 그들은 교과서를 바탕으로 잘 팔릴 수 있는 참고서 집필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물론 평가는 독자들, 아니 방청객들, 즉 대중들이다.
이 대목에서 대한민국의 중견 직장인들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입사한 지 10년이 되고 15년이 되었다고 안심하는 직장인들이 어디 있는가? 언제 잘릴지 몰라서 늘 전전긍긍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새로운 능력이나 기술을 익히려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공감한다. 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꼭 점수를 매겨서 능력을 평가해야 하겠는가? 다른 방식은 없는가?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점수화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바꾸면 시청률이 떨어질 것 같으니 더욱 안타깝다. 순위와 점수에 이미 익숙한 우리들이다.


'복면가왕'은 매우 독특하다. 일단 직업 가수가 아닌 사람들도 노래를 잘 부르기만 하면 무대에 설 수 있다. 자격증 없이도 누구나 다 도전할 수 있는 혹은 학위가 없어도 누구나 다 일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이다. 즉 다른 어떤 간섭 요인(외모, 복장, 분위기, 예전의 명성 등) 없이 오로지 노래 실력만으로 경쟁을 하니까 공정하고 정의롭다. 또한 연예인 패널들이 복면 가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각자의 의견을 말하는 과정에서는 그간 우리가 얼마나 고정관념 혹은 편견에 사로잡혔는지를 알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슬프다. 복면을 써야만 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주는 세상이 우리 대한민국인가? 혹시 복면을 벗어던진 후에도 잠시 우리의 오류를 인정한 다음에 시간이 흘러서는 다시 고정관념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지는 않을까? '복면가왕'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때로는 불편하게도 만든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불편한 진실을 자꾸 떠오르게 만든다. 서바이벌 가요 경연 프로그램을 오로지 예능적인 차원에서만 즐길 수 있는 대한민국을 꿈꾸면서 이번 주말에도 채널을 고정시킬까 한다.


글: 손석한(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의학박사,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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