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우는 은퇴 소감에서 "현역으로 더 뛰고 싶었고, 그만큼 준비도 많이 했는데 불러주는 팀이 없었다. 시간만 길어져봐야.. 언제까지 결정을 미룰 수는 없었다. 아쉽지만 여기까지 하려고 한다. 많이 아쉽다. 그 동안 도움주신 분들과 팬들께 감사드린다"며 은퇴를 밝혔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은 생각해둔 것이 없다. 천천히 쉬면서 어떤 것이 맞는 길인지 생각해 볼 예정이다"고 전했다.
경북고-단국대 출신의 강동우는 지난 1998년 1차 지명으로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 123경기에서 타율 0.300에 124안타 10홈런 30타점 74득점 22도루를 기록하며 사자군단의 톱타자로 맹활약했다. 신인 규정타석 3할은 강동우가 마지막이다. 이런 활약으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드림팀' 멤버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불운이 찾아왔다. 강동우는 1998년 10월 대구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이병규(39)의 타구를 잡다 펜스에 부딪히며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대표팀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이때부터 강동우에게 '비운의 스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2년의 재활 시간을 보낸 강동우는 2001년 복귀시즌 풀타임을 뛰며 타율 0.251, 6홈런 42타점 54득점으로 부활을 알렸고, 2002년에는 타율 0.288, 134안타 9홈런 49타점 75득점 11도루로 활약하며 팀의 첫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강동우는 2005년 타율 0.240, 88안타 6홈런 38타점을 기록한 후 두산으로 트레이드됐고, 두산에서 2년을 뛴 후 2008년 KIA 타이거즈로 다시 트레이드됐다. KIA에서도 한 시즌을 뛴 후 한화로 다시 트레이드 됐다.
한화로 이적한 후 강동우는 다시 부활했다. 2009년에는 타율 0.302, 153안타 10홈런 48타점 27도루를 기록하며 팀 타선의 한 축을 맡았다. 무려 11년 만에 기록한 3할 이었다. 2011년에도 타율 0.288, 149안타 13홈런 51타점 17도루로 좋은 성적을 올렸다. 13홈런은 개인 한 시즌 최다 홈런이었다. 또한 전 경기(133경기)에 출장해 당시 최고령(37세) 전경기 출장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2012년 76경기, 2013년 26경기에만 나선 끝에 시즌 후 팀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연봉을 깎아서라도 뛰고 싶다"며 현역 연장 의지를 불태웠지만 불러주는 팀은 나타나지 않았고, 끝내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성적은 1,427경기 타율 0.270, 1,247안타 75홈런 456타점 687득점 133도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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