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칼럼] 박유천, 그리고 연예인에 대한 환상

손석한 / 기사승인 : 2016-06-15 09: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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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겸 배우 박유천(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4일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 종업원으로부터 성폭행으로 고소당했다. 그러나 15일 종업원은 기존 주장을 번복하고 고소를 취하했다. 박유천이 출연했던 KBS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왼쪽부터 유아인, 박유천, 박민영, 송중기. (KBS 홈페이지 캡처)

제6장 박유천, 그리고 연예인에 대한 환상


가수 겸 배우 박유천이 성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20대 여성 유흥업소 종업원 이 씨는 손님으로 찾아온 박유천 씨로부터 업소 화장실에서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유천 씨 측은 ‘돈을 노린 일방적 주장’이라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박유천은 현재 공익근무요원의 신분으로 강남구청에서 복무하고 있는 중이다. 앞서 한 달 전쯤 개그맨 유상무도 성폭행 혐의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는 지난 5월 SNS 상에서 알게 된 20대 여성을 실제로 만나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이에 유 씨 측은 ‘그녀가 여자 친구였다.’며 해명했지만, 자신이 진짜 여자 친구임을 밝히는 새로운 여성이 등장하면서 진실 공방에 휩싸였던 것이었다.


남성 연예인들의 여성 성폭행 혐의는 대중들의 공분을 샀고, 그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연예인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잘 생긴 얼굴과 부드럽고 따뜻하면서도 반듯한 이미지의 남성 연예인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두근거리고, 로맨틱한 상상도 하며, 미래의 배우자상을 꿈꾸기도 하는 여성 팬들에게는 실망과 배신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잠시 현실과 환상의 구분을 해 보고자 한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멋진 남성의 이미지는 과연 그의 실제 모습일까 아니면 만들어진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만들어진 이미지입니다. 잘 짜인 각본과 연출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적인 이미지죠. 실제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떨지는 잘 모르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이성적인 차원에서의 질문과 대답이다. 대중들은 의외로 미디어에 비춰진 그(또는 그녀)의 모습을 마치 실제 인격(또는 성격)인 것처럼 받아들인다. 즉 감성적인 측면이 이성적인 측면에서의 판단을 뛰어넘는다.


예컨대 박유천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점잖고 올곧은 선비처럼 혹은 '쓰리데이즈'의 정의롭고 충직한 대통령 경호관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에서의 배역을 캐스팅할 때 실제로 그간 알려진 이미지와 성격으로 배역의 적합성을 고르기도 할 테니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실제 모습과 TV 속 모습이 아주 다르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과 같이 성폭행 혐의로 구설수에 오르면 일단 그것 자체로 사람들은 놀란다. 그러면서 여러 생각들에 빠질 것이다. ‘뭔가 오해가 있었겠지?’, ‘여성의 말이 정말 사실인가?’, ‘혹시 돈을 노린 행동이 아닌가?’ 등의 의문은 비교적 그를 옹호하는 입장의 생각들이고, ‘술 마시고 성 폭행을 했다고 하니 큰 잘못을 했네.’, ‘그간 알려진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구나.’, ‘어떻게 화장실에서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지?’ 등의 생각들은 그를 비난하는 생각들이다. ‘아무리 유명한 연예인라고 할지라도 젊은 남성인데 정말 큰 실수를 했네.’, ‘둘 사이에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을까?’, ‘경찰 조사를 끝까지 지켜보자.’ 등의 생각들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는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서 지인들과 유흥주점에 갔고, 그곳에서 술을 따르고 어울려주는 접대 여성들과 술을 마셨다.
돈 많은 연예인이 일을 끝내고 사적으로 비싼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관한 것이므로 무슨 문제가 되는가? 아니면 공인인 연예인이 그것도 공익근무요원이라는 군인을 대체하는 신분에서 그러한 술집에 갔다는 자체가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인가? 이 논란은 연예인이 공인인가 아닌가의 논란과도 연관되어 있다. 그가 만일 호프집이나 고기 집에서 술을 마셨다면 이러한 논란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성 접대원이 있는 비싼 술집에서 술을 마신 것 자체가 많은 대중들을 실망시키고 있다. 그것은 그가 그동안 쌓아왔던 그의 이미지와 너무 상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예인을 향한 대중의 인식은 현실적인 차원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에 근거한 인식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상은 대중들이 갖고 있기 전에 누군가가 치밀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들은 연예인 자신과 함께 연예관련 산업 종사들이다. 그렇게 만들어 놓은 환상에 의해서 누군가가 부와 명성을 쌓고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기에 아무도 그러한 환상이 깨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성균관 스캔들'에서의 점잖고 멋진 선비를 가끔 떠올리면서 흐뭇한 감정을 느꼈던 대중이 그가 바로 술집에서 취한 모습으로 어떤 여성과 화장실에서 성관계를 맺는 남성이라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싫어진다. 그것은 마치 그간 내가 맛있게 먹고 즐겨왔던 특정 음식이 사실은 불량스런 재료로 조리되었고 인체에 해로웠던 성분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과 마찬가지다.


대중은 누군가에게 쉽게 현혹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매력에 강렬하게 빠져들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마음속에서 작동하는 환상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 의해서건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 대중들은 실망하고 돌아선다. 그리고 그렇게 입은 상처는 결국 분노의 화살로 바뀐다. 한편, 대중들은 그렇게 입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또 다른 환상을 쫓을 것이다. 이러한 일반인의 환상은 연예인에 대한 사랑을 낳고, 이러한 사랑이 연예인의 인기와 부를 유지시켜 주는 근원적인 힘이다. 따라서 연예인은 공인이라고 할 수 있고, 대중의 눈과 귀를 항상 의식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글: 손석한(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의학박사,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 한편 15일 서울 강남경찰서는 박유천을 고소한 유흥업소 종업원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존 주장을 번복하고 "강제성 없는 성관계였다"며 박유천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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