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칼럼] 영화 '주토피아'가 '헬 조선'에게...

손석한 / 기사승인 : 2016-05-19 11:5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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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주토피아'와 '헬 조선'


월트 디즈니 사의 애니메이션 ‘주토피아(Zootopia)’는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 영화였다. '주토피아'는 단어 그대로 동물원(Zoo)과 이상향(Utopia)을 합성하여 '동물들의 이상향'을 뜻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잘 어울려서 살아가는 도시를 그리고 있다. 동물적인 본능이 사라진 채 문명을 이루면서 마치 인간처럼 살아가는 곳이 '주토피아'였다. 하지만 '주토피아'의 경찰관이 되기 위해 꿈을 키우는 주인공은 처음부터 매번 난관에 부딪혔다. 주인공 주디 홉스는 토끼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 용감하기는 했으나 늑대 친구에게 무시를 당했고, 천신만고 끝에 경찰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주차 단속이라는 한직에 배치되었다. 수사를 하고 범인을 추격하여 잡는 그야말로 경찰다운 일은 모두 등치가 크고 힘이 좋은 육식동물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상향이라고 할지라도 사회적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면서 사회적 편견을 깨나가고 있었다. 그래야 주인공이고 영웅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개인의 무한한 노력으로 사회적 편견을 깨나가면서 성공을 거두는 주인공을 보면서 갑자기 '헬 조선'이 생각났다. 최근 우리 사회를 암울하게 감싸고 있는 '헬 조선'이라는 말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을 한들 이미 견고해진 사회적 시스템을 뚫지 못해서 평생 노예 같은 삶을 사는 이 땅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헬 조선'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주디 홉스를 본받으라고 말할 자신이 내게 있는지 생각해봤을 때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디 홉스와 같은 토끼가 이 땅의 수많은 흙 수저에게 희망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은 충분하게 들었다.


영화 '주토피아' 스틸 컷.
영화 '주토피아' 스틸 컷.

주디 홉스의 최대 장점은 낙관주의였다. 자신이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낙관주의를 버리지 않았기에 그녀는 정말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개인의 행복과 성공을 점칠 때 실제 들이는 노력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낙관주의적 마음가짐이다. 그녀의 친구가 된 여우 닉 와일드는 매우 복잡한 캐릭터였다. 처음에는 사기꾼이요 나쁜 사람의 전형처럼 보였다. 거짓 연기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얻어내고, 그것으로 자신보다 더 약한 사람들을 등쳐먹는 사회악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린 시절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여우라는 사실 때문에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보이스카우트에서 쫓겨나간 일이었다. 이와 같이 어릴 적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사건은 개인의 인생과 인성을 바꿀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교활하게 보면 그것을 받아들이고, 나도 실제로 교활하게 살아가자!’는 결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는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닉은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이미 이 정도 수준으로밖에 여기지 않고 있는데, 내가 왜 괜한 노력을 해서 헛된 꿈만 확인하고 좌절감까지 느끼겠는가 하는 일종의 자기 방어요 합리화였다. 우리 사회가 이미 청소년기의 주디 홉스를 성인기의 닉 와일드로 변종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다.


시장 라이언하트는 멋진 수컷 사자였다. 그것은 마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각종 스펙을 화려하게 쌓은 금 수저 출신 인재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진실을 숨기는 소인배 같은 행동을 했다. 혹시 외관은 화려하지만 내면은 옹졸하기 그지없는 라이언하트와 같은 사람이 우리의 정치 지도자로 존재하지는 않을까 두려워졌다.


하기는 더 사악한 존재가 있었으니 시장 보좌관인 벨 웨더였다. 작고 연약한 양에다가 안경까지 쓴 그녀의 모습에서 아무도 권력 욕구를 눈치 채지 못했으니, 혹시 우리의 실제 사회에서도 그녀와 같이 양의 탈을 쓴 늑대들이 넘쳐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벨 웨더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을 이간질시킨 후 수적 우위에 있는 초식 동물의 지배를 꿈꾸었으니 혹시 초식동물의 입장에서는 영리한 전략가로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초식동물이 핍박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비교적 평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던 사회에서 일부러 육식동물의 야성적 본능을 일깨우는 약물을 주입하는 악행을 저질렀으니 그녀야말로 영화 전체에서 가장 으뜸가는 악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교도소에서 주디 홉스의 TV 인터뷰를 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심술궂어 보였고, 반성의 기미라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만에 하나 어떤 정치적 의도에 의해서 그녀와 같은 음모와 술수를 꾸미고 실제로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는 자가 있다면, 우리 사회가 그에게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고, 나아가 그를 철저하게 단죄해야 할 것이다.


영화가 끝나가는 무렵 매력적인 여성 가젤이 나와서 ‘트라이 에브리싱(Try everything)’을 부를 때는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초식동물 가젤을 사냥하기는커녕 옆에서 춤을 추며 보좌해주는 호랑이들의 멋진 모습이 흐뭇한 미소를 자아냈고, 가수 샤키라가 밝고 활력 있는 목소리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하자면서 동물들 간의 화합을 촉구할 때는 정말로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영화 '주토피아'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과연 해피엔딩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보다 더 못한 그야말로 '헬 조선'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작고 귀여운 토끼가 경찰이 될 수 있는 사회, 수많은 주디 홉스가 활기차게 다닐 수 있는 사회, 더 많은 잠재적인 닉 와일드가 양심과 소신에 따라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 사악한 지도자가 발붙일 수 없는 사회의 도래를 꿈꾼다. 그것은 '주토피아'가 아닌 ‘휴먼 유토피아(Human Utopia)’다.


글: 손석한(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 의학박사,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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