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칼럼] 2016년, 장영실과 세종 같은 이는 없는가

손석한 / 기사승인 : 2016-03-08 22: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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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현재, 장영실 같은 인재가 많아지고 또 그런 인재를 알아보는 세종같은 인물이 절실하다.(KBS 1TV '장영실' 화면 캡처)

제1장 장영실과 세종대왕


KBS 1TV 인기 드라마 '장영실'이 과학 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면서 시청자들의 많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여러 가지 과학 기구들이 등장하면서 장영실의 천재성과 선구자적인 혜안에 모두 놀라고 있는 중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당시 조선의 과학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장영실은 노비에서 면천 과정을 거쳐 높은 벼슬에까지 올라갔다는 점에서도 매우 경이롭고 흥미로운 스토리를 제공한다. 노비인 그가 당대의 왕 태종에게 발탁되어 결국 세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각종 업적들을 쌓아간다는 점이 대단하지 않은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흙 수저를 갖고 태어났는가 아니면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가의 논란에 휩싸이며 새로운 계급 사회의 출현을 염려하고 있는 시점에서 시사되는 바가 매우 크다.


사법고시 폐지에 대한 찬반 논란 역시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지는지의 여부와 연관되어 왈가왈부되고 있는데, 무려 600년 전에 개인의 뛰어난 능력으로 사다리를 타고 수직 상승한 사례가 있었음을 확인한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아마 많은 젊은이들이 장영실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음에랴.


그런데 과연 장영실은 혼자의 능력이 뛰어나서 소위 출세를 한 것일까? 그랬으면 좋으련만 당시 조선이 양반과 사대부를 엄격히 예우하고, 철저한 신분제도를 국가 유지의 근간으로 삼았기에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예외의 중심에는 최고 지도자인 세종대왕이 서 있었다. 세종대왕이 수많은 사대부 관료들의 반대와 견제에도 불구하고 장영실을 중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조선의 발전과 부강을 한 결 같이 바란 그의 순수성과 열정, 그리고 신하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인간 존중과 겸손함의 미덕이었다.


세종대왕은 자신의 측근인 장영실을 결코 개인적으로 출세하게끔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고, 오직 조선의 발전을 위해서 그에게 합당한 책임과 권력을 부여했을 뿐이다. 어느 누가 반대할 수 있는가? 혹은 반대를 하더라도 무슨 논리로 대세를 얻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세종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장영실 역시 조선을 위해서 그리고 세종을 위해서 열심히 자신의 천문학 지식과 손 기술을 발휘해나갔다. 그를 죽이려고 했던 사촌 장희제와 잔혹한 노비 킬러 김학주마저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을 넓고 깊게 파고들면서 스며든 애국심 때문이었다. 그에게 조선에 대한 애국심과 군주에 대한 충성심은 모든 가치요, 하나의 종교와도 같았을 것이다. 바로 이처럼 굳은 신념이 그의 타고난 재능에다가 더욱 더 가치 있는 노력을 가미시켜서 자격루와 같은 엄청난 발명품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여기서 잠시 세종과 장영실의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읽어보자. 세종의 마음속에 장영실은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믿을 만하여 매우 중요한 대상인물로 작동하고 있다. 장영실은 이와 같은 세종의 마음속에 비춰진 자신의 이미지를 느끼고 있다. 이에 장영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종의 정신적 표상은 지엄하고 무서운 왕이라기보다는 따뜻하고 자애로운 가족과 같음이다.


세종은 다시 장영실의 마음속에 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느끼면서 그의 진실성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장영실은 다시 세종의 확고한 호감을 느끼면서 점점 더 그에 대한 충성심을 올려나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종과 장영실의 마음속에 각 상대방의 정신적 표상이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기에 그들은 서로 굳건한 신뢰관계를 맺고 유지해나갈 수 있음이다. 둘의 사이에 다른 어떤 음해와 방해가 있어도 마치 부모-자녀 혹은 형제자매와 같은 애착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한편, 장희제의 마음속에 새겨진 장영실의 정신적 표상은 어떠한가? 나쁜 이미지와 좋은 이미지가 뒤섞여 있다. 비율로 치자면 60대 40이다. 나쁜 이미지란 자신보다 항상 한 발 앞서는 미운 경쟁자요, 세종의 사랑과 인정을 빼앗아가는 질투의 대상이며, 자신이 업신여겼던 노비 주제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괘씸한 사람이다. 좋은 이미지란 자신이 보고 배워야 하는 역할 모델이요,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 자랑스러운 대상이다. 비록 나쁜 이미지가 60으로 더 커서 희제는 영실을 괴롭히고 싫어하지만, 나머지 40의 좋은 이미지도 꽤 강한 세력을 갖고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구하게 된다. 장영실을 구한 것이라기보다는 위대하고 존경스런 동종 과학인을 구한 것이다. 하늘이 내린 자격루를 지키기 위해서 오랜 친구인 김학주를 칼로 찌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렇다면 김학주란 인물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장영실의 정신적 표상은 무엇인가? 순도 100의 미운 이미지요 두려운 대상이다. 장영실의 천재성은 기존 사대부 사회의 권력 유지를 위협하는 강한 위력을 지녔다. 게다가 실제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처럼 여겼을 것이다. 어릴 적 양반 자제로서의 사회적 위상이 점차 몰락하면서 초라하고 한심스런 칼잡이로 전락하는 그의 모습과 대비되어 점차 멋지고 큰 사람으로 성장하는 장영실을 시청자들은 쉽게 비교하며 느낄 수 있다. 비단 현재의 시청자들뿐만 느꼈을 것인가? 과거의 실존 인물들도 역시 매일 새롭게 커나가는 장영실을 보면서 피부로 직접 느꼈을 것이다. 김학주는 자신의 노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거두려는 태도가 아닌 자신을 방해하는 능력자를 제거함으로써 자신에게 기회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태도를 지닌 인물이었다.


만일 지금 우리 사회에 김학주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면, 이 얼마나 끔찍하고 절망스런 일인가? 현재의 대한민국에 장영실과 같은 젊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종과 같은 기성세대가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더할 나위 없이 밝고 찬란할 것이다.


- 글: 손석한(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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