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2010) - 지켜줘서 고마워요...

권상희 영화 칼럼니스트 / 기사승인 : 2014-03-18 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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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가 과부화 상태일 때 액션 영화를 보면 마치 오랜 체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듯 가슴 뻥 뚫린 시원함을 맛보게 된다.
서슬 시퍼런 칼싸움, 그 사운드만으로도 섬뜩한 총소리, 죽기 일보직전인양 피가 난자한 등장인물들... 현실이라면 결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에피소드들의 연속, 하지만 이런 것들이 뉴스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사건들보다는 괜찮다 위로하며 보게 된다.
무엇보다 좋은 건 내러티브 속 선과 악이라는 너무도 흔해 빠진 이중구조에 결국은 '선'이 승리한다는 결말 일게다. 관객의 바람대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상투적인 결말이 안겨주는 희열,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결말이지만 그게 참 좋다. 왜냐구?
현실은 그런 뻔한 결말이란 없으니까. 어찌 된 건지 요놈의 세상은 선보다는 ‘악’이 더 많이승리한다. 정말 살 맛 나지 않는 세상의 모습이다...에휴... 그래서 액션영화가 좋다. 우리가 원하는 뻔(?)한 결말을 아주 멋지게 포장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장르니까... <아저씨> 역시 그런 액션영화였다. 계속해서 나오는 감탄사에 나 스스로가 놀랐던 영화.....바로 <아저씨>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이 명사가 갖고 있는 느낌을 말하자면...일단 후덕하다, 나이 들어 보인다, 멋있다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다, 옆집에 산다...등등.
딱히 부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해석이 가능하지도 않은 매우 평범한 이미지...
그런데 아저씨라는 이름이 가질 수밖에 없는 고정관념을 이 영화는 단번에 깨뜨려버린다.
이 아저씨, 정말이지 과묵하고, 잘생겼다. 또 옆집에 사는 소녀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만큼 무모하고도 용감하다. 게다가 악한 모두를 무찌를 만큼 탁월한 무술실력을 갖췄다.
‘싸움’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현란한 움직임, '아저씨'의 시각적 스타일의 방점을 찍어주는 것이 바로 이 액션에 있다. 하지만 아쉬운 건...우리 옆집엔 이런 아저씨가 없다는 사실이다.

태식은 과거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 정보사 최고의 특수요원이었다- 출산을 앞둔아내가 상대편 공작원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이는 그에게 결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가 되어 스스로를 변두리 전당포, 어두운 곳으로 내몰게 만든다.
엄마대신 태식을 의지하는, 어딘지 태식과 닮아 있는 어두운 이미지의 소녀, 9살 소미.
마약 사건으로 엄마가 살해 되면서 만석 조직에게 아이는 납치되고, 사라진 소미의 행방을 쫓기 위해 오랜 세월 은둔하던 태식은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자신과 소통하던 단 하나뿐인 친구를 구해내야만 하기에......
마약으로 시작된 사건, 그건시작에 불과했다. 소미 엄마는 살해되어 모든 장기가 적출 된 채 발견되고 소미는 자신과 같은 아이들이 붙잡혀 있는 개미굴이라는 곳에 팔려간다. 그곳에서 소미는 만석 일당에게 이용당한 후 자신의 엄마 같은 끔찍한 운명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다. 9살 아이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같지 않은 현실.

돈이 된다면 사람의 목숨조차 ‘그 따위 것’ 으로 치부해버리는 만석. 그는 사람을 도끼로 내려찍고도 피범벅이 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다. 자신은 살겠다고... 살기등등한 섬뜩함, 태연하게 자행되는 극악무도한 살인행위들...태식은 자신의 아내와 뱃속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 죄책감을 소미에게 투영이라도 하듯 죽을힘을 다해 그들과 싸우고 또 싸운다.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보고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난 오늘만 산다”
예언이라도 하듯 마치 오늘만 살 것 같은 모습의 태식. 총알이 몸에 박혀도, 칼에 찔려 피를 흘려도 이 싸움만큼은 꼭 이겨야 한다. 그래서 소미를 지켜내야만 한다. 그 일은 지금 그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이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또 넘겨 드디어 만석과 마주한 태식. 살겠다고 아등바등 돈을 들고 도망칠 준비를 하던 만석은 죽음 앞에서조차 비열한 모습이다. 사력을 다해 만석을 죽인 후, 마침내 태식은 그의 간절한 바람대로 소미와 만나게 된다. 길고 험난한 길을 지나 드디어 조우하게 된 두 사람. 소미를 대신해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조용히 되내어본다.
“나 잊을 수가 없었던 따뜻한 눈빛 속의 너... 나 지울 수가 없었던 마지막 내 기억 속의 너..” 엔딩장면에 흐르는 'Dear'의 노랫말은 마치 두 사람의 정서를 대신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엔딩을 장식하는 태식의 우는 얼굴이 더욱 처연해 보이는 건...힘들게 만난 두 사람이 곧 겪게 될 이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 일거다.
“혼자 설 수 있지?”
소미에게 남긴 이 말에 묻어나는 쓸쓸함, 그건 바로 태식이 자신에게 스스로 던진 질문일지도 모른다.

스토리 진행상 개연성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것을 불식시키고도 남을 만큼 호쾌한 액션연기, 훌륭한(이 표현 외에는 달리 떠오르는 수식어가 없다) 비주얼이 보는 즐거움을 가득 선사해 준 영화 '아저씨'.
물론 태식은 판타지가 투영된 ‘백마 탄 왕자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벽하리만큼 비현실적인 인물을 만나는 기대감, 그게 바로 영화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아, 근데 이 아저씨,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CF 에서의 짧은 만남은 아쉽기만 하다.
모 여배우와의 열애설, 그건 더더욱 아쉬운 소식이다. ㅋㅋ
어서 원빈의 차기작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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